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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0)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ㆍ삼보일배도 모자라서 결국 스님을 사라지게 하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는 17세 때 출가를 했다. 속세의 일을 캐내어서 무엇하겠는가마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이 아마도 사춘기의 명민한 소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훗날 전국을 도보 순례할 때 환갑이 다 된 그는 공주산성 근처에서 중학교 소풍 때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교복을 입은 그의 머리를 만지며 “너 큰스님 되겠구나” 했다는 말을 기억해냈다. 수덕사에 출가한 그는 덕숭 문중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응담이라는 스승 밑에 상좌가 되는데 응담 스님은 40년 동안 상좌라고는 오직 수경 한 사람만을 두었다. 수경 스님(가운데)은 거리의 선승이다. 몸을 던져 걷고 온 마음을 다해 또 걷는다. 2008~2009년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9) 나무를 심는 사람 공지영 | 소설가 ㆍ“낭구는 십년이 아니라 이십·삼십년을 내다보는 기라” 그는 그저 평범한 농부였다. 학교라고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어릴 적부터 배워야 한다는 어머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글을 겨우 깨쳤다. 아내와는 열아홉에 혼인을 해서 위로 딸 하나와 밑으로 아들 둘을 두었다. 쌍계사 앞의 기름진 논은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그는 농부로서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밭으로 나갔고 저녁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무학이었지만 염치가 있었고 종교는 없었지만 하늘이 무서운 줄을 깨닫고 있었으며 변방의 농부였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생 산을 가꿨다. 처음엔 나무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젓가락만한 나무..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바르셀로나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nifilwag@naver.com 도시에는 랜드 마크가 있습니다. 타인들에게 얼마나 유명한지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랜드 마크의 주체는 바로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랜드 마크는 그 형태로 도시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지점에 있는 사람과 랜드 마크와의 관계입니다. 전체적으로 평평한 유럽의 도시들에선 으레 대성당이 랜드 마크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되고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건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얼핏 보면 야하게 생긴 바르셀로나의 악바르 타워도 마찬가지인 경우입니다. 수도회사의 사옥인 이 건물을 위해 건축가는 물이 솟아나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감상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른 법이니 건물에 대..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상하이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도시는 산업화의 산물입니다.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다른 목적을 가진 도시들이 계획에 의해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근대 이후의 산업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장이 도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도시는 공장과 노동자와 그 노동자들의 주거공간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필연적으로 공해와 오염이 밀려왔지요. 시대가 흘러 이제 공장은 도시 밖이나 나라 밖으로 밀려납니다. 도시는 순차적으로 재개발의 열풍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런데 몇몇 도시들은 그들의 공장들을 부수는 대신 재활용을 했습니다. 기계가 있던 자리를 문화로 채웠습니다. 상하이의 M50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공장들이 젊은 예술가들의 터전으로 바..
[이철수의 돋을새김]너희가 강을 아느냐?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푸껫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바다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냥 서서 보는 것과 어디 들어가서 보는 것. 각각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추위나 더위 등의 기후적인 요소들은 배제해 봅니다. 우선 그냥 서서 보는 것. 대자연 속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집니다. 인간의 존재가 모래 한 알 정도로 느껴집니다. 자연의 위대함이 다가옵니다. 조금 고독하기도 합니다. 우주의 긴 시간 가운데 한 사람의 생애는 찰나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어디 들어가서 보는 것. 건물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조금 만만합니다. 건축은 대개 우리 편입니다. 그런 만큼 바다와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이라도 있다면 어쩐지 바다를 공유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합니다. 무엇보다 인간도 건축..
[이종민의 음악편지]슬퍼도 비탄에 잠기지 않는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벌써 1주년! 작년 이맘때쯤 동학농민혁명 기념 고등학생 백일장을 치르다가 접한 청천벽력, 부엉이 바위의 비보. 노란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닥치던 2002년, 거리를 뒤덮던 붉은 함성이 요즘 다시 울려퍼지고 있는데 혼자 차가운 흙 속에서 분권민주주의의 거름됨을 자부하고 있을까? 조작된 북풍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민초들의 가슴 저린 승리 소식을 전해 듣기는 한 것일까? 그래도 “운명이다!” 되뇌고 있을 것인가? 탱탱하게 익은 매실 수확이 뿌듯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 응어리가 영 풀리지 않습니다. 매실주 홀짝이며 접하는 남아공 월드컵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안타까운 탄식도 잠깐, 가시지 않는 허전함이 숙취 뒤끝처럼 끈질기기만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
[이철수의 돋을새김]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