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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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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 - 로마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7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로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긴 여행은 1년을 넘어서고 있었지요. 로마는 오래 머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첫인상을 지우려면 일단 적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도시에 익숙해지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찬란한 낡은 것들이 심장을 뛰게 합니다. 서구문물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든 요즘이기에, 모든 서양 역사의 기원이 되는 것들을 실물로 만나는 경험은 현재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캄피돌리오 광장의 공간감도 좋았지만, 가만히 그곳에 앉아 로마의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일도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의 세상..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바르셀로나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2년 반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을 떠난 지 벌써 4년이 되어 갑니다. 한 도시에서 2년 이상 살아본다는 것은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마치 제2의 고향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지요. 서울로 돌아와 정신없이 살면서 어설펐던 스페인어마저 거의 잊어 버렸습니다. 매번 ‘다시 한 번 놀러가야지’ 하고 맘을 먹지만 짬을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상은 그렇게 나를 잠식합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면 무얼 제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이 얼마나 더 지어졌는지 보러 갈 수도 있고, 지중해변에서 여유롭게 미녀들을 구경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알던 친구들에게 연락해 밤을 불사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은 건 그냥 천천히 걸..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 - 북촌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우리는 전통에 집착합니다. 스페인에는 전통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반면, 우리는 전쟁과 식민지의 경험으로 많은 유물들을 상실했던 이유가 클 것 같습니다. 이미 전통의 형상이 확고하다면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현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북촌의 지도를 대고 건물들의 형상만 뽑아서 그려봤습니다. 해방 전후로 전통적인 도시 조직이 파괴되었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다시 옛 모양으로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자본이 한옥들을 잠식해가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어떤 방향이 정답일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북촌의 모든 거대한 건물이 사라지고 한옥으로만 이루어진 동네로 환원..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마카오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의 폐해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에 걸쳐 고르게 분포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신들의 문명이 몰살당했던 아메리카나, 긴 노예생활의 수렁에 빠졌던 아프리카에 비해 아시아는 가장 뒤늦게 고통을 받았지요. 덕분에 언어와 문명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도시에는 열강들이 남긴 상처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서서히 제국주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식민지배의 흔적이었던 아시아 도시들의 유럽식 건축들이 이제는 관광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450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온 마카오 역시 그들의 주요 관광 자원은 포르투갈식 건물과 광장입니다. 중국 문화와 포르투갈 문화가 뒤섞이며 자아내는 풍경은 제법 매력적입니다. 우리 ..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짠디가르(인도)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짠디가르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야심차게 건설한 행정신도시입니다. 그 임무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가 맡았지요. 건설된 지 50년 정도가 지난, 인도에서 가장 인도 같지 않은 미래도시 짠디가르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13년도 지났습니다. 학생 때부터 르 코르뷔제의 팬이었던 것입니다. 짠디가르는 도시 전체가 르 코르뷔제 스타일의 노출콘크리트 건물로 차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기쁨을 줄 수 있는 관심사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쁜 여자’만큼 여전히 관심이 있는 ‘르 코르뷔제’이기에 그곳은 나에게 천국의 도시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전거 릭샤를 타고 녹지로 덮인 주거단지를 지나며 나는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떨렸습니다. 눈물이..
[오기사의 여행스케치]병산서원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또 병산서원에 갔다고요?” “좋은 데는 자주 가야 하지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요?” “이게 그냥 참 좋은데…, 그게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뭐 야한 얘기도 아닌데 그냥 하세요.” “그게 문제지요. 야하거나 자극적이면 그냥 사진으로라도 보여주면 되는데, 병산서원은 사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느끼기가 어려워요.” “그럼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거 한 가지만 말해줘요.” “풍경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만대루의 존재는 건축의 모범답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네 건물로 둘러싸인 마당의 입장에서는 활짝 열린 공간이 되고, 확 트인 전망의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닫힌 공간이 되거든요. 경사지를 잘 활용한 덕에 뛰어난 낙동강의 풍광을 다양한 각도에서..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도산서당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건축에는 으레 그 건축과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볼품없고 흉물스럽게 놓인 건물도 실은 누군가의 생각과 고민의 결과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만큼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건축의 모습도 결국 제각각이게 됩니다. 보통 건축에 담긴 생각의 근원은 집주인일 수도 있고, 건축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시공자나 그 지역의 정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지요. 그렇기에 집의 크기나 모양새, 재료나 공간구분, 그리고 그 집들이 모여 있는 풍경은 한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한국의 도시들엔 아파트가 많은데, 사실 한국 사회의 모습과 아파트처럼 어울리는 조합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파트의 모습에는 이런 모습이 보통 담겨 있습니다. 빨..
[오기사의 여행스케치] 기억의 건축 ‘아그라’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에 갔습니다. (본토 발음은 따즈마할에 가깝습니다) 유명한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타지마할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사랑하는 왕비를 기리기 위해, 왕비만큼 아름다운 건축을 세운 것이죠. 하지만 타지마할보다 더 즐거웠던 곳은 타지마할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그라 포트라는 요새였습니다. 이 무굴제국의 군사용 요새는 나중에 궁전으로 바뀐 곳입니다. 두 가지의 극단적인 기능이 겹치다 보니 이곳은 아름다움과 긴장이 공존합니다. 눈부신 궁전으로 향하는 길은 좁고 긴 경사로인데, 적군이 쳐들어와도 같은 길을 통해야 하는 곳입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설렘을 증가시키는 장소지만, 적병에게는 화살에 맞아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