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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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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바르셀로나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11-04 19:53:43ㅣ수정 : 2010-11-04 21:24:33 비밀이 담겨 있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가령 밖에서 보면 3층인데 사실은 숨겨진 4층이 있는 건물 같은 것 말이지요. 비밀은 간직할 때 아름다울 테지만 솔직히 비밀을 캐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바르셀로나 구시가에 있는 작은 건물 하나가 슬쩍 말을 걸어옵니다. “사실 나는 과거가 있어.” 1층 카페에서 우유를 듬뿍 탄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는 고개를 듭니다. 낡은 건물에 전형적으로 모던하게 인테리어를 한 곳입니다. 문득 카페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전 양식의 기둥과 아치가 다시 보입니다. 20세기 초에 지어졌을 평범한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재료가 대리석입니다. ..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서울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10-28 21:36:17ㅣ수정 : 2010-10-28 21:36:18 차가운 계절이 돌아옵니다. 광화문도 곧 겨울을 맞이할 겁니다. 광화문에는 딱히 갈 곳이 많지 않습니다. 만날 가던 곳을 또 가게 되지요. 그래도 지루함은 없습니다. 시간의 퇴적층이 희미하게나마 쌓인 거리는 그 자체로 즐거운 장소입니다. 잘 찾아보면 구석구석 이야깃거리가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끌벅적한 대형 커피집에서 가장 난방이 안되는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사실 그곳이 제일 조용합니다. 창밖의 풍경은 늘 비슷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생각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나는 한 해 동안 잘 머물러 있었구나’하고 위안을 하지요.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 오사카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10-21 21:27:14ㅣ수정 : 2010-10-21 21:27:15 도시는 카페로 뒤덮여 있습니다.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러 갑니다. 카페를 고르는 취향과 더불어 선호하는 자리를 보면 각자의 성향이 드러납니다. 일설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구석자리를 좋아하고 중국인들은 중앙의 자리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위치가 어떻게 됐든 좁은 자리를 좋아하나 봅니다. 대개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자기의 일들에 열중합니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도 작아지고 공간은 차분한 분위기가 됩니다. 일본에서 나의 선택은 ‘창가’의 ‘좁은’ 자리였습니다. 창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밖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개심사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10-14 21:18:49ㅣ수정 : 2010-10-14 21:18:50 “개심사(開心寺)에 가면 마음을 열 수 있나요?” “강백호의 왼손과 같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공간은 단지 거들 뿐입니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마음에 달려 있지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번잡해진 개심사 주차장을 지나 돌계단을 오릅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금세 속세를 잊게 하지요. 계단을 모두 오르면 기다란 방형의 연못과 외나무다리가 나타납니다. 다리를 건너 종각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작은 문을 통과합니다. 곧 네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안마당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짧은 순례를 되새기며 툇마루에 가만히 걸쳐 앉아봅니다. 사바세계에 두고 온 일을 잊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베로나(이탈리아)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입력 : 2010-10-07 21:38:15ㅣ수정 : 2010-10-07 21:38:15 한 거리에 여러 시대의 건물이 뒤섞인 모습이 좋습니다. 그 길엔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을 천 년 전의 사람이 걸었을 거라고 상상하면 마냥 두근거립니다. 이탈리아 베로나도 그런 곳 중 하나였습니다. 한눈에 2000살은 먹은 도시란 걸 알 수 있었지요. 도시 중심에 위치한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덕분입니다. 적당히 관광지를 기웃거리다 어느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고대의 경기장과 르네상스 이후의 건물들이 이루는 길가였습니다. 카페라테 한잔을 시켜두고 세 시간 동안 세월을 느낍니다. 마침 경기장 안에서는 밤에 열릴 오페라 리허설이 한창입니다. 2000년이라는 ..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라스베이거스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입력 : 2010-09-30 21:44:54ㅣ수정 : 2010-09-30 21:44:54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호텔로 갔습니다. 프런트에 여권을 내밀었습니다. 이탈리아계로 보이는 직원이 묻습니다. “한국에서 바로 날아온 건가요?” “예스 다이렉트 플라이트.” “와우 한국에서도 직항이 있군요!” “예스. (저도 그게 놀라워요)” 방에 짐을 풀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뜨거운 사막의 태양이 반갑습니다. 하지만 곧 너무 뜨거워집니다. 달이 뜨면 다시 나오겠다고 다짐하며 일단 잤습니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창밖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번쩍번쩍 와글와글. 라스베이거스의 건물들은 껍데기로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어떻게 치장되어 있는가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지요. 요즘의 대세는 이탈리..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기차여행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09-16 21:50:07ㅣ수정 : 2010-09-16 21:50:07 기차는 훌륭한 건축입니다. 순수하게 기능적인 논리로 짜인 그 모양새에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내부 공간은 쾌적합니다. 아직도 몇몇 기차에는 변기 구멍 밑으로 철길이 보이는 화장실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그 또한 묘한 쾌감을 줍니다. 무엇보다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기차만한 공간은 또 없습니다. 감옥이 아닌 이상 모든 공간은 바깥 풍경과 나름대로의 관계를 맺습니다. 창은 그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특히 기차의 창은 채광이나 통풍보다는 풍경을 바라보게 하는 목적이 더 큽니다. 특별히 시선을 가리는 것 없이 모든 경치를 객차로 끌어들입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막 사색을 해야 할 ..
[오기사의 여행스케치] 공간의 프레임-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09-09 21:25:09ㅣ수정 : 2010-09-09 21:25:09 게으름은 보통 비난받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게으름은 미덕이 됩니다. 패키지여행으로 떠나지 않는 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밥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을 자유가 주어집니다. 스노클링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런 자유를 위해선 숙소가 중요합니다. 굳이 시설의 좋고 나쁨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 우선이지요. 그 공간이 어떤 것들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빈둥거림의 질은 달라집니다. 창 밖으로 수평선이나 산봉우리가 보이면 좋을 겁니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코타키나발루는 키나발루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곳입니다. 4101m의 동남아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