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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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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런던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09-02 21:34:07ㅣ수정 : 2010-09-02 21:34:33 런던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어제 갔던 펍(Pub)이요. 기네스가 정말 맛있었어요. 그런 거 말고 구경할 만한 데 중에서요. 그럼 테이트모던이죠. 사람들의 취향은 각기 다릅니다. 내가 좋다고 남이 좋아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런던에서 단 하나를 정해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테이트모던을 택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슷한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 위세는 이미 빅벤과 대영박물관과 타워브리지를 넘어설 지경입니다. 옛 화력발전소를 적절히 개조한 곳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미술관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예전에 거대한 발전기가 있던 1층의 터..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뉴욕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입력 : 2010-08-26 21:38:47ㅣ수정 : 2010-08-26 21:38:47 이른 아침에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이 시각의 여행자는 보통 초라한 신세가 됩니다.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방황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약해둔 방을 찾아가기에도 너무 이릅니다. 여정이 주는 피로는 구경 다니는 걸 귀찮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뉴요커처럼 아침이라도 먹어보기 위해 식당을 찾았습니다. 어느 높은 건물 1층에 있는 작은 카페테리아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방이 유리로 된 거대한 로비 공간이었는데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1층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공공 공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캔 아이 해브 어, 어, 디스 앤드 디스. 앤드 커피 플리즈.” 진열대를 가리..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프라하(체코)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여행지에서 카페에 들어갔다면 모름지기 창가에 앉아야 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창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는 커피 한 잔 값을 담보로 잠시 낯선 세상을 관조합니다. 비를 맞으며 걷다 들어간 프라하의 카페에서도 창가에 앉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젖는 사람이었다가 젖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몸은 따뜻해지고 맘은 편안해집니다. 서서히 프라하 시민들의 상세한 모습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와 잘 어울렸고, 도시의 정취는 비와 잘 어울렸습니다. 우산을 잘 쓰지 않는 유럽인들이라지만 우산을 든 행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카페에서 창가 자리는 한정적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창을 포기해야 합니다. 좋은 자리를 꿰차고 있었..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리움미술관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종교를 떠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사에 들러본 적이 있을 겁니다. 각 절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겠지만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면 탑의 존재입니다. 대개 사찰의 중심 공간은 주요 건물들로 둘러싸인 마당인데 그곳에는 보통 탑이 서 있습니다. 고대 삼국시대의 원형을 지닌 절이 아니라면 탑은 보통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이런 비대칭의 오묘한 긴장감은 자칫 썰렁할 수도 있는 마당을 무형의 공간언어로 가득 채워줍니다. 즉 마당만 있으면 그곳은 단순히 둘러싸인 공간이지만, 그 중간 어딘가에 놓인 탑 덕분에 마당은 다시 탑을 에워싼 공간이 되는 거지요. 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통로가 됩니다. 현대의 건축에서 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술작품들..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병산서원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좋은 곳에 가면 오래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흐르는 시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면 괜찮겠지요. 태양이 움직이는 모습, 빗방울의 각기 다른 형상들, 바람이 실어오는 향기…. 이런 것들은 보통 짧게 스쳐가며 느끼기 어렵습니다. 좋은 곳에서 오래 머물러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몰지각한 여행객들의 존재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잘 모르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남을 괴롭게 하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 여행객들을 만났을 땐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하지만 좋은 장소를 놓치기 싫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대루는 서원의 안뜰과 낙동강의 풍광을 건축적으로..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모로코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천장에 창이 있는 집은 낭만적입니다. 방에 누워서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구경할 수도 있고, 자기 전에 유성이 떨어지는 걸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비라도 오면 유리를 치는 빗방울 소리가 감성을 마구 자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많이 괜찮아졌지만 어쨌든 지붕에 난 창은 벽에 난 창보다 물이 샐 확률이 높습니다. 침대 위에서 빗방울을 직접 맞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유리창 위에 볼품없는 낙엽이나 새똥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신경이 거슬릴 게 분명합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전형적인 북아프리카식 건물로 지어진 여관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유리로 된 창 대신에 아무것도 막혀있지 않은 작은 중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바르셀로나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nifilwag@naver.com 길은 좁을수록 좋습니다.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말씀입니다.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느끼는 인간미와 편안함은 차량으로 가득한 대로에서 얻지 못하는 감정이지요. 삶의 모습이 달라진 오늘날은 조금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 한 대도 오르기 힘든 골목길을 무작정 옹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장 ‘네가 가서 살아봐’ 하는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억들이 담긴 그 공간이 단순한 논리 개발로 쉽게 사라지는 모습은 분명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길의 소멸은 곧 기억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로마 나보나 광장 근처의 뒷골목들 역시 좁았습니다. 마차를 이용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길이기에 자동차가 지나기에는 ..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바르셀로나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nifilwag@naver.com 도시에는 랜드 마크가 있습니다. 타인들에게 얼마나 유명한지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랜드 마크의 주체는 바로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랜드 마크는 그 형태로 도시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지점에 있는 사람과 랜드 마크와의 관계입니다. 전체적으로 평평한 유럽의 도시들에선 으레 대성당이 랜드 마크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되고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건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얼핏 보면 야하게 생긴 바르셀로나의 악바르 타워도 마찬가지인 경우입니다. 수도회사의 사옥인 이 건물을 위해 건축가는 물이 솟아나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감상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른 법이니 건물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