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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의 음식 100년](22) 빈대떡 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ㆍ1920년대 길거리 간이음식점 인기 메뉴 ㆍ해방 후엔 빈대떡집 유행 ‘최고 안주로’ “오늘도 조선여행사에 있는 H형이 찾아왔다. 그가 묻지 않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시간이 되면 가방을 들고 내 단골집인 빈대떡집으로 찾아간다. 을지로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조그마한 빈대떡집까지 극성이도 차서 가곤 한다. 여늬 술집처럼 젊은 여인네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건만 구수한 빈대떡에 약주 맛은 유달리 기맥힌 매력이 잠재해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해방 후 급속도로 발전하고 보급된 것의 하나는 누구나 빈대떡이 아니랄 사람은 없을 게라. 여하간 빈대떡이 없으면 내가 망하고 내가 없으면 빈대떡이 망할 것만 같다. 개중에는 빈자(貧者)떡 혹은 빈대병(賓待餠)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빨래의 내공 노르웨이의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돈을 주고 여성을 사서 잠자리를 한 적은 있어도 정서적인 교류를 해본 여자 친구는 없었다지요? 엄청난 일을 저질러놓고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남자의 그 파괴적이고 뒤틀린 심성 뒤엔 여성혐오증이 있었습니다. 여자를 좋아하세요? 좋아하면 살피게 되고, 잘 지내게 되고, 보살피게 되지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여자들이 행복해합니다. 책을 읽고 있든, 피아노를 치든, 춤을 추든, 목욕을 하든, 빨래를 하든 여자들이 하나같이 부드럽고 하나같이 빛납니다. 르누아르는 여자를 좋아한, 여자와 잘 지낸 남자 같습니다. 저 그림은 ‘빨래하는 여인들’(사진)인데, 이제 막 빨래를 하려고 소매를 걷어올리고 있는 저 여인, 르누아르가 좋아한 여..
[이종민의 음악편지]8월의 질주 ‘어거스트 광시곡’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8월, 어디론가 질주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꼭 해변일 필요도 없고 굳이 산을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 비 비, 이로 인한 산사태와 물난리에 씻겨간 허전함 채울 수만 있다면, 이 떨쳐버릴 수 없는 몸과 마음의 끈적거림 달랠 수만 있다면,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영화 를 다시 보았습니다. 도시의 소음조차 음악으로 듣는 주인공 에반(혹은 어거스트 러쉬), 바람 속에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고 엄마 아빠의 부름을 확인하려 하는 그의 절실함, 그 진정성을 닮고 싶었습니다. 달에게 말을 걸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은, 젊은 시절의 낭만, 영화 열심히 보면서 되..
[광주일보 월요광장]느림의 미학과 지리산학교 2011년 08월 01일(월) 00:00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만든 ‘지리산학교’가 어느새 7기 종강을 하고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지리산학교를 벤치마킹한 한라산학교가 2년 전에 만들어졌고, 경남 울주군에선 백무산 시인과 김수환씨 등이 ‘소호마을문화학교’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최근 지리산권의 ‘구례 지리산사랑학교’와 ‘지리산학교 남원·함양’이 개교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광주의 무등산학교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학교를 모태로 한 파급효과가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독립적인 형태로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지리산학교는 여전히 실험 중이었지만, 지난 3년 동안 성과에 비해 실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다소 부끄럽고 낯간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
[광주일보 월요광장]귀농·귀촌의 자화상 2011년 07월 04일(월) 00:00요즘 들어 부쩍 지리산의 빈집을 구해달라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마땅한 집이 없어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21세기 문명사적인 ‘터닝 포인트’요, 아름다운 일이다. ‘녹색성장’이나 ‘4대강 살리기’ 혹은 ‘서민중심’이라는 항간의 독점적 언어 폭력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이 꿈꾸는 생태적인 삶과 귀농·귀촌·귀향이 다 옳은 것만도 아니다. 굳이 지적하자면, 귀농·귀촌을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멋진 집을 짓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먼저 풍수지리를 공부하게 되고, 마을에서 적당히 떨어진 자연풍광이 뛰어난 곳에 땅을 사고 포클레인으로 터를 만든 뒤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어한다. 생태건축의 양식이든 아니든 그 가상한 꿈을 나무랄..
[광주일보 월요광장]고향의 슬픈 세계화 2011년 06월 06일(월) 00:00우리 시대의 농촌은 이제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태어나서 자란 곳’ 혹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이니, 말 그대로 농경사회였던 우리의 고향은 대개 농촌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서의 농촌은 급격하게 붕괴되고 말았다. 눈빛과 피부색이 다른 이국의 여인들과 그의 2세들이 장터에 나와 국밥을 먹는다. 가난의 대물림이 국경을 넘어 우리 고향의 빈자리를 소외와 반인권으로 메우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 황구나 똥개는 애완견들로 대체됐다. 도시의 자식들이 키우다가 늙고 병들자 고향으로 보내온 애완견들이 마을 마을을 누비고 다닌다. 고향의 부모님들이 국적도 알 수 없는 불우한 애완견들의 보모이자 호스피스..
[광주일보 월요광장]‘늦봄의 미학’ 배롱나무 2011년 05월 09일(월) 00:00 봄꽃에 취해 몸과 마음- 뫔이 덩달아 달뜨다 보니 어느새 ‘봄날은 간다’ 오뉴월이다. 봄날 아침 퍼뜩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배롱나무였다. 백일홍이라 부르는 이 나무는 덩달아 달뜬 나에게 진정제 같은 것이었다. 매화꽃이며 진달래꽃이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 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각성제 같은 것이었다. 벚꽃 축제가 끝난 뒤 분분히 꽃잎이 지고 잎이 나고 ‘진달래 산천’이 되어도 백일홍 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봄꽃들의 잔치가 끝난 뒤에야 밤나무며 모과나무가 슬슬 연초록의 여린 입술을 내미는데도 이 나무만은 마치 죽은 듯이 동면의 겨울나무로 서있었다. 맨살의 온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났지만 봄이 와도 아직은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을 그는 이미 알고..
[광주일보 월요광장]만화방창에 토종벌들 어디 갔나 2011년 04월 11일(월) 00:00섬진강변은 지금 말 그대로 만화방창이다. 꽃샘 추위 속에 매화며 산수유 꽃이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개나리·물앵두·진달래와 더불어 길가의 벚꽃들이 팝콘 터지듯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섬진강 양안을 따라 하동에서 구례까지 19번 국도가 그러하고, 망덕포구에서 사성암 아래 동해마을까지 861번 지방도가 그러하다. 꽃과 사람과 차량이 서로 어울려 한바탕 봄날의 활기를 찾고 있다. 바야흐로 봄은 봄이니 저 꽃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이다. 저 꽃들마저 없다면 대체 무슨 ‘정신의 흰밥’으로 또 하루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은 없다지만, 아주 잠깐일지라도 삶의 저 환한 꽃길이 있어 슬그머니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도 하고, 속 깊은 맹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