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898)
[풍경 엽서]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말 있습니다. 류철 사진작가폐갱도였던 이곳에 비가 내리고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랍니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주며, 제 스스로 치유하고 정화하기를 20여년. 도롱뇽이 사는 일급수 못과 비경을 품고 되살아났습니다. 증오하고 원망하였다면 불가능한 일, 너그럽게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해 여름, 나를 용서하고 당신을 용서하며, 그렇게 나는 화절령을 내려왔습니다. 어제는, 도시의 탐욕과 교만을 꾸짖듯, 이빨을 드러낸 비가 천둥치며 내렸습니다. 이 비 그치면 또 쓰러진 것들 넘쳐날 것입니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말 있습니다. 되살아남! 영월 화절령, 도롱이못에서 [ 풍경 엽서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
[풍경 엽서]당신의 여름에 귀기울이겠습니다 류철 사진작가어느새 칠월의 깊은 곳까지 왔습니다. 독 오르는 햇살 따갑긴 하여도 새털구름 나풀대는 벽공, 남루한 하루를 말리면 금세 뽀송뽀송해집니다. 아, 또 간간이 부는 바람은, 얼마나 반가운가요. 간절한 것들은 모두 바람이 된다는데…. 멀리서라도 기별을 주세요. 저 푸른 들녘 끝에 선, 내 마음은 언제나 수신대기. 그러나 희망을 훼방이라고 우겨대는 잡음엔 귀를 막겠습니다. 오로지 속삭이는 당신의 여름에 귀기울이겠습니다. 경상남도 합천 야로리에서 [ 풍경 엽서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정동 에세이]시베리아 바이칼이 말을 건넸다 박남준 | 시인 joon5419@hanmail.net잠자는 땅, 시베리아에는 풍요로운 호수라는 이름을 가진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있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수심이 깊다는 호수, 그 신비로운 물빛은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했다. 바이칼에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4인 1실의 침대칸 열차를 타고 꼬박 3박4일을 달려가야 한다. 그것도 연착을 하지 않을 경우다. 바이칼로 들어가는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이르쿠츠크를 향해서 기차가 덜컹거렸다. 비좁은 열차 안은 낡은 침구류가 들썩일 때마다 풀썩거리며 먼지가 휘날렸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객실 안의 창문을 열려고 했는데 안간힘을 써 봐도 한 뼘이 채 시원스레 열리지 않는다. 나무로 만들어진 ..
[김남희의 남미 걷기](13) 볼리비아 포토시 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ㆍ진짜 막장의 삶, 두려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 막장인생이라는 말. 사는 게 힘들다고, 일에 지친다고도 쉽게 말하지 말아야겠다. 하루 하루를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이들 앞에서는. 두려웠다. 겨우 두 시간. 갱도 안에서 보낸 그 짧은 시간 동안 살아나오지 못할까 무서웠다. 땀으로 흠뻑 젖게 만드는 열기가, 탁한 공기와 매운 광물의 냄새가, 무릎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낮고 좁은 갱도가 두려웠다. 랜턴을 끄면 완전한 암흑. 그 몇 초의 암흑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매일을, 몇 년을, 몇 십 년을 아침마다 이곳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부끄러웠다. 암흑의 먼지구멍 속에서 일하는 그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가. 코카잎과 ..
[주영하의 음식 100년](21) 대폿집의 유행 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5·16 혁명 직후 눈의 띄도록 서리를 맞은 것은 사창 이외에도 고급요정이 있다. 그러나 이 년 후인 지금 혁명적인 청신한 기풍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혁명 전의 ‘장’이나 ‘관’이 한때 ‘왕대포’를 팔았으나 또다시 무슨 ‘나무집’ 등 예전 이름으로 바꿔놓고 밤늦게까지 주지육림의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밤만 되면 홍등가는 술내 풍기는 젊은이들이 흥청거리고 한때 영업이 안 되어 굶어 죽겠다던 ‘바’에서는 값비싼 ‘맥주’가 바닥에 질펀하며 통금시간이 다가오면 남녀가 쌍쌍이 술 취한 걸음거리로 ‘호텔’과 ‘여관을 찾는다. 도시의 뒷골목은 다시 혁명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다만 고급요정에 나타나는 술꾼들의 직업은 예나 이제나 거의 다름없지만 그 얼굴이 크게 바뀌었다고나 할까?” 이 글은 동..
[이종민의 음악편지]사랑과 자유를 위한 아다지오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아프리카에 다녀왔습니다. 세상 더럽고 어지러운 것들 모두 쓸어버리려는 듯 종말의 홍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 술의 신 바쿠스의 힘을 빈 것도 아니요, 어느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 시의 날개”를 이용한 것도 아닙니다. 두려운 바깥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듯 창문 모두 암막으로 가린 채 하얀 연기 요란한 기차를 타고 케냐의 커피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말을 타기도 했고 성능보다 겉모습이 멋스러운 지프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식민야욕에 점점 멍들어가고 있는 땅. 한때는 ‘지상낙원’이라 불리기도 했던 검은 대륙의 볼수록 다채로운 풍광들을 둘러보기 위해. 결국 노란 경비행기의 유혹에 이끌려 광활한 초원과 그 위를 뛰어다니는 물소들, 못지않게 널따란 물길 따라 힘찬 비상의 날갯짓을 ..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1) 모네의 수련 연못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ㆍ우주가 깃든 한 송이 꽃, 수련 처음 연꽃을 보고 놀란 곳은 실상사에서였습니다. 연못에 연꽃이 시들어 꽃 피는 시기가 막 지났구나, 하며 아쉬워했는데, 다음날 아침 찬란히 피어나는 연꽃을 보았습니다. 연꽃이 햇살에 반응하며 살아나는 거였습니다. 소르르 소름이 돋았습니다. 꽃의 매혹! 그 무덥던 날, 얼마나 오랫동안 망연히 연못을 바라봤을까요. 폴짝거리며 연잎 사이를 뛰어다니는 개구리는 물수제비를 만들고, 바람이 불면 물결이 생기는데, 눈부신 햇살은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맑고 투명하고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그 세상에 여왕처럼 도도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 햇살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연못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꽃은 아름답다..
[농촌진흥청 선정 ‘가볼만한 농촌마을’](5) 뗏목·황토구들 체험 “더위야 가라”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 강원 인제 냇강마을 “앞사공 뒷사공 물조심하게…. 뗏목 타고서 술잔을 드니 설움이 다 풀어지네.” 백두대간의 지맥인 대암산(해발 1304m)이 병풍처럼 둘러서 안온한 느낌이다. 도도히 흐르는 소양강 상류의 인북천은 청량감을 더해준다. 칡소, 뒹소 등 크고 작은 폭포와 용늪 등 비경을 간직한 대암산 자락이 인북천에 닿는 지점에 고즈넉한 산골 농촌마을이 살포시 둥지를 틀었다. 강원 인제군 북면의 ‘냇강마을’을 찾은 피서객들이 뗏목타기 체험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인제군 제공이곳이 바로 뗏목체험으로 이름난 강원 인제군 북면의 ‘냇강마을’이다. 이곳을 찾으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이어가는 산촌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에 감탄하며 먼저 속세에 찌든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