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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 여행스케치]보이지 않는 도시들 - 루카(이탈리아) 오영욱|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충남 서산에는 해미읍성이 있습니다. 작고 아담한 조선시대의 성입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1491년에 처음 축조됐고, 1973년까지는 성 안에 관공서와 초등학교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삶의 흔적들이 모두 철거되고 옛 관아 등의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의 복원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삶의 모습을 철거하고 단지 구경거리가 될 옛 건물로 복원하는 것은 역사를 박제로 만드는 일입니다. 오히려 성 안에 있던 초등학교가 지금도 존재했다면 꽤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15세기의 성 안에 20세기의 초등학교가 있는 21세기의 모습인 셈이죠. 이탈리아 피렌체 서쪽으로 루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가이드북의 지도에서 발견한 타원형의 광장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
[이종민의 음악편지]흑백다방의 추억 한 자락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앙드레 가뇽의 ‘미완성 전주곡’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 김병종 화백이 진해 흑백다방과 그 주인장, “허명(虛名)에 허기진 적 없던” 자유인 유택렬 화백을 기리며 맺은 말입니다. 요즘 천안함 침몰 여파 때문인지 진해 시절의 모습들이 소용돌이로 떠오르곤 합니다. 그 중심에 ‘진해 문화의 등대’ 흑백다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55년 출생연도가 같아서일까, 폴 매카트니의 ‘흑과 백’(Ebony and Ivory)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는 상관없이 고전음악만 들려주던 그곳이 그런 음악에 아직 익숙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도 정겨웠습니다. 고전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곳은 만남과 휴식의 장소였습..
[주거의 사회학](2부)우리 안의 욕망…④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건설재벌 광고주에 길들여진 언론, 집값 상승 부채질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하지는 않고 투기심리를 조장해 국민을 ‘고분양가 아파트’의 제물로 삼아야겠습니까? 한국 언론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메피스토펠레스’란 생각이 듭니다. 건설재벌에 영혼을 저당잡히고 광고를 따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부동산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가 건설사와 부동산업자의 입장에 편향됐다는 지적은 오래된 얘기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신문·방송이 사회 부조리를 감시·고발하는 기능을 하는 ‘언론’인 동시에 ..
[주거의 사회학]광고 속 아파트는 언제나 ‘궁전 같은 집’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탤런트 이영애가 햇살이 들어오는 스파에 앉아 붉은 꽃잎을 흩뿌린다. 공연장에서는 발레단의 공연을 감상한다. 쇼핑애비뉴에서 쇼핑을 마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화면 아래로 자이전용도시라는 자막이 흐른다.’ 광고 속 아파트는 궁전이나 호텔 같은 집을 연상시킨다. 그곳에 등장하는 집주인은 모두가 행복하고 여유롭다. 집 때문에 대출이자에 허덕이고,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빡빡한 직장생활을 감내하는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위 TV광고에 등장하는 서교자이 아파트 가격은 가장 작은 163㎡(49평)형이 12억~15억원대다. “광고 문구들을 보자. 자기네 40층 아파트가 들어오면 온 도시가 푸른 녹지로 변한다고 생떼를 쓰는 회사도 있다. 가..
[주거의 사회학]문학·영화 속의 ‘집’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71년 ‘광주대단지’ ~ 2009년 ‘용산’ 달라진 건 없었다 ‘집’은 현대 한국사회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1950년대 처음 아파트가 등장하고 70년대에 고급주거형태로 자리잡으면서 한국 주거의 사회상은 크게 바뀌었다. 주택공급과 주거환경개선 명목으로 진행된 개발의 이면에서 서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삶터를 잃어간 반면, 산업성장의 수혜를 입은 중산층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시대상은 문학과 영화에도 반영돼 있다. 마포아파트1950년대 말~60년대 초 서울에 처음 등장한 아파트는 충격의 대상이었다. 조정래는 작품 「비탈진 음지」를 통해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10) 화전놀이 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산이 증발하냐 강이 떠내려 가냐” 서울 것들이 잠을 깨우고 난리야” 화전놀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내가 서울서 가만히 있을 리 없는 것은 당연했다. 요즘 하도 지리산에 데려가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번호표도 뽑고 자동차 기름 값도 받고 하려고 별렀는데 평일에는 역시 갈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나는 화전놀이가 시작된다는 11시에 맞추어 버들치 시인 집에 도착하기 위해 전날 먹은 술이 깨지도 않은 새벽 6시 반부터 집을 나섰다. 속은 쓰려 오는데 그래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지리산 갈 때마다 들르는 전주 왱이 콩나물국밥집도 못가고 열심히 갔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예정 시간을 보니 거의 11시15분쯤 도착할 것 같았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걸었는데 버들치 시인이 받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9) 버들치 병들다 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여자들은 참 이상해, 혼자 산다고 버시인만 챙겨” 버들치 시인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왔다.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기에서 녹음만 흘러나왔다. “바람과 풀과 나무와 물과 햇빛과 모든 것이 푸르러졌습니다. 그 푸르름 속에 있습니다. 저라고 어찌 견뎌내겠습니까. 이미 저도 푸르러졌습니다. 연락사항 남겨놓으세요. 그럼 안녕.” 버들치 시인은 이제 마당에 연못을 파고 버들치를 기른다. 집 앞 개울에 키우던 버들치가 잔인한 인간들의 손에 죽은 뒤의 일이다. 시인은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에 약하다. 이원규 시인 촬영버들치 시인의 이 자동응답기 녹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 낭송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는 그가 쓴 이 자동응답 문구들이 철철이 화제가 된 적도 많았다. 이런 건 어떤가. “덥기는 ..
[주거의 사회학](2부) 우리 안의 욕망…③ ‘서민 정치’의 맨얼굴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공약은 ‘서민 주거 안정’ … 정책은 ‘토건세력 키우기’ 주택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주거가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양질의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임대 거주가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국민의 기본권인 주거 권리를 국가가 담보하는 것이다. 정작 우리의 주택 정책은 토건 세력들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부는 경기부양수단으로 주택정책을 악용해 집값 거품을 키우기 일쑤였고,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민심몰이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발정책을 남발해왔다. 원칙보다 이해관계에 얽힌 부동산 정책은 일관성 없이 흔들리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불패신화’의 밑바탕이 됐다. 빈부격차와 주거불안으로 인한 피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