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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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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월요광장]‘늦봄의 미학’ 배롱나무 2011년 05월 09일(월) 00:00 봄꽃에 취해 몸과 마음- 뫔이 덩달아 달뜨다 보니 어느새 ‘봄날은 간다’ 오뉴월이다. 봄날 아침 퍼뜩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배롱나무였다. 백일홍이라 부르는 이 나무는 덩달아 달뜬 나에게 진정제 같은 것이었다. 매화꽃이며 진달래꽃이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 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각성제 같은 것이었다. 벚꽃 축제가 끝난 뒤 분분히 꽃잎이 지고 잎이 나고 ‘진달래 산천’이 되어도 백일홍 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봄꽃들의 잔치가 끝난 뒤에야 밤나무며 모과나무가 슬슬 연초록의 여린 입술을 내미는데도 이 나무만은 마치 죽은 듯이 동면의 겨울나무로 서있었다. 맨살의 온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났지만 봄이 와도 아직은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을 그는 이미 알고..
[광주일보 월요광장]만화방창에 토종벌들 어디 갔나 2011년 04월 11일(월) 00:00섬진강변은 지금 말 그대로 만화방창이다. 꽃샘 추위 속에 매화며 산수유 꽃이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개나리·물앵두·진달래와 더불어 길가의 벚꽃들이 팝콘 터지듯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섬진강 양안을 따라 하동에서 구례까지 19번 국도가 그러하고, 망덕포구에서 사성암 아래 동해마을까지 861번 지방도가 그러하다. 꽃과 사람과 차량이 서로 어울려 한바탕 봄날의 활기를 찾고 있다. 바야흐로 봄은 봄이니 저 꽃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이다. 저 꽃들마저 없다면 대체 무슨 ‘정신의 흰밥’으로 또 하루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은 없다지만, 아주 잠깐일지라도 삶의 저 환한 꽃길이 있어 슬그머니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도 하고, 속 깊은 맹세도..
[정동 에세이]시베리아 바이칼이 말을 건넸다 박남준 | 시인 joon5419@hanmail.net잠자는 땅, 시베리아에는 풍요로운 호수라는 이름을 가진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있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수심이 깊다는 호수, 그 신비로운 물빛은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했다. 바이칼에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4인 1실의 침대칸 열차를 타고 꼬박 3박4일을 달려가야 한다. 그것도 연착을 하지 않을 경우다. 바이칼로 들어가는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이르쿠츠크를 향해서 기차가 덜컹거렸다. 비좁은 열차 안은 낡은 침구류가 들썩일 때마다 풀썩거리며 먼지가 휘날렸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객실 안의 창문을 열려고 했는데 안간힘을 써 봐도 한 뼘이 채 시원스레 열리지 않는다. 나무로 만들어진 ..
[낮은 목소리로]에너지와 농촌의 위기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중·고등학교 때 산업을 기술집약적 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나누던 기억이 납니다. 농업은 대표적 노동집약적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농업은 에너지집약 산업입니다. 기술도 노동도 에너지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시대입니다. 자연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적도 지방이나 사막, 남·북극을 제외하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과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능력은 거의 비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식량 생산의 결정적 요인입니다. 우리나라 농업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높은 생산비의 일차적 원인은 과도한 땅값과 기름값입니다. 전국의 모든 땅이 투기 대상이 되는 문제는 차치하고, 지금처럼 고환율 정책으로 기름값을 높게 유지한다면, 농산물값이 단기적으로는 폭락과 폭..
[낮은 목소리로]내 인생의 반려 농기계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suam585@hanmail.net 오랜 세월 자신의 옆자리를 지켜준 사람을 인생의 반려자라 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고양이나 개, 심지어 뱀이나 이구아나까지 사람과 한방에서 생활합니다. 애완동물이라는 개념과는 약간 다른 개념인 것 같습니다. 장난감처럼 소일거리로 데리고 노는 대상이 아니고 ‘삶을 나눈다’라는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삶을 나눈다는 건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는 뜻일 테지요. 그런 의미라면 반려식물도 있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 놀던 정원의 소나무,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하나씩 심은 백일홍(배롱나무)은 집안 식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평생 그 자리를 지켜 왔겠지..
[낮은 목소리로]봄 들녘, 애잔한 황혼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못자리를 하고 밭고랑을 만들었습니다. 고추를 심었고 논에 물을 잡아 어린모를 넣었습니다. 6월에는 모내기를 할 것이고 7월 초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하겠지요. 춥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가 싶더니 들녘은 경운기 소리, 관리기 소리로 요란합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습니다. 어른들은 봄이 지나야 비로소 한 살 더 먹은 노인들이 됩니다. 아주 느리게 나이를 드시지만 아주 확연히 작년과 다른 기운을 느낍니다. 지난밤, 조용하게 숨을 거두었다는 이웃마을 아저씨의 소식에 ‘뭔 복으로 그런 복을 타고 났을까’ 이구동성으로 말하십니다. 편안하게 죽는 것은 모든 어른들의 염원입니다. ‘99882 삽시다!’ 어버이날 효도잔치에서 면장이 건배사로 외칩니다. 구십구살까지 팔팔하게 살..
[낮은 목소리로]인간이 만든 ‘독’에 죽어가는 지구 강광석 | 전농 강진군정책실장 우수, 경칩이 지난 지 한참 되었습니다. 우수가 되었다고 얼었던 땅이 다 녹지는 않고 경칩이 되었다고 총소리 듣고 출발하는 육상선수처럼 개구리들이 다 튀어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바야흐로 4월 중순이 지나야 개나리 노란빛이 더 선명해지고 진달래 꽃망울이 입을 더 앙당무는 시절을 맞이합니다. 양력 4월 중순에 내리는 비를 어른들은 ‘보리살비’라 부릅니다. 보리는 대개 음력으로는 3월 그믐, 양력으로는 4월 말이나 5월 초에 이삭이 팹니다. 열매가 고개를 내민다는 건데요, 그전 10일간이 영양분이 제일 많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겨우내 가문 들판에 비가 내리니 이 비가 보리의 살이 되는 보리살비입니다. 그런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사능비가 온다고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정동 에세이]커피 한 스푼, 여유 두 스푼 비니엄 홍 | 비니엄인 아프리카커피연구소 소장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지구상에서 커피는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음료 중 하나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언제부터 마셨을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프리카의 북동쪽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의 고원 도시인 카파(KAFFA)에서 ‘커피의 전설’을 발견하게 된다. ‘칼디’라는 소년이 염소를 이끌고 산기슭에 올라 있던 중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활기차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는 이상히 여기게 된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풀과 나뭇잎을 먹고 졸거나 하던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난 후부터는 밤에도 잠을 안 자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목동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음날 염소들이 먹었던 붉은 열매를 따먹어 보았더니 맛이 달콤할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머리가 맑아지고..